2026년 7월 4일
언어가 벽이 되지 않는 세상, 그 첫걸음으로 「반쪽」을 만듭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낯선 별에서 외계 생명체를 만났는데, 무언가를 삼키는 것만으로 그들의 말이 곧장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들려온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웃기다는 생각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만난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말하고, 미국인은 그걸 영어로 바로 알아듣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통역기를 꺼내 드는 손도, 번역 앱이 돌아가길 기다리는 어색한 몇 초도 없이. 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게 내 최종 목표다.
물론 안다. 너무 거창하다는 걸. 구글도 삼성도 이 방향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고, 나는 이제 막 시작하는 1인 개발자다. 그래서 이 비전은 저 멀리 지향점으로만 걸어두기로 했다. 대신 발밑의 첫걸음에 집중한다. 실패해도 좋다. 다만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거다. 이 방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이 언어의 벽 앞에서 진짜 뭘 힘들어하는지 — 걸음마다 배움 하나씩은 꼭 주워 올 생각이다.
첫걸음을 어디에 디딜까
처음엔 여행자용 통역 앱, 국제커플을 위한 뉘앙스 도우미 같은 것들을 굴려봤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국의 적지 않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빌려준다. 이미 아이들 손에 기기가 쥐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언어를 벽으로 배운다. 단어를 외우고 시험을 치르면서. 만약 아이들이 다른 언어를 벽이 아니라 갖고 노는 것으로 처음 만나게 된다면? 그건 내 비전의 가장 이른 씨앗을 심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첫걸음은 아이들을 위한 아주 단순한 게임으로 정했다.
배리어 게임이라는 오래된 지혜
게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다가 '배리어 게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언어 교육에서 오래 쓰여온 놀이 방식인데, 원리가 재밌다. 두 사람 사이에 가림판을 세우고, 한쪽에만 정보를 준다. 예를 들어 한 명에게만 완성된 그림을 주는 식이다. 그러면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강제로 만들어진다. 내가 아는 걸 상대는 모르니까.
언어는 필요할 때 가장 빨리 는다. 이 놀이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겹을 더 얹기로 했다. 정보의 벽 위에 언어의 벽을. 단서가 영어로 주어지면, 아이는 그 영어를 읽고 말해야 하고 상대는 알아들어야 게임이 풀린다. 영어가 공부 대상이 아니라 게임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게 「반쪽」이다. 두 아이가 각자 태블릿을 들고 마주 앉는다. 한 아이의 화면에는 완성된 그림이, 다른 아이의 화면에는 재료만 있다. 서로의 화면은 보이지 않는다. 말이 오가야만 그림이 완성된다. 완성 버튼을 누르는 순간 두 화면의 그림이 나란히 놓이고, 같으면 — 내 말이 통한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을 만들고 싶어서 이 게임을 만든다. "내 말이 통했다!"라는 그 짜릿함. 내 비전의 아주 작은 축소판이다.
자세한 내용은 함께 올리는 소개서에 담았다. → 「반쪽」 소개서 보기
만들면서 버린 것들
1인 개발이라 버리는 결정이 곧 설계였다. 기록 삼아 몇 가지 남겨둔다.
실시간 연결을 버렸다. 태블릿 두 대라고 하면 보통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로 기기를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곰곰이 보니 연결이 필요 없었다. 놀이 내용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두 아이가 각자 앱에서 같은 놀이 카드를 고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한쪽 기기는 설명하는 사람의 화면을, 다른 기기는 만드는 사람의 화면을 열면 되고, 정답 판정도 한쪽 기기가 혼자 할 수 있다. 결과 확인은 아이들이 서로 화면을 보여주면서 하면 되는데, 오히려 이게 대화를 한 번 더 만든다. 학교 와이파이는 기기 간 통신을 막아둔 경우가 흔하고,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사이의 연결은 구현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버리니까 가벼워졌다.
서버를 버렸다. 계정도 로그인도 없다. 모든 게 기기 안에서 돌아간다. 덕분에 세 가지가 한꺼번에 풀렸다. 아이들 대상 앱에서 가장 무거운 개인정보 문제가 원천적으로 사라졌고(수집하는 게 없으니까), 인터넷이 없어도 돌아가고, 내 개발 범위가 확 줄었다.
욕심을 버렸다. 첫 버전은 미션 한 종류, 캐릭터 꾸미기 하나다. 지도를 보고 길을 알려주는 미션, 기기 실시간 연결, 이런 건 전부 다음으로 미뤘다. 작게 내놓고 배우는 게 먼저다.
다음 걸음
코드를 짜기 전에 종이로 먼저 실험해볼 생각이다. 그림 카드 두 벌과 가림판 대신 책 한 권이면 이 게임을 흉내낼 수 있다. 주변의 초등학생 아이 앞에서 놀아보고, 어느 순간에 아이 눈이 반짝이는지 지켜보려 한다. 코드 한 줄 없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싼 배움이다.
이 글을 읽고 뭔가 떠오른 게 있다면 —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이든, 비슷한 비전을 품은 개발자든, 그냥 언어의 벽에 자주 부딪히는 사람이든 — 편하게 연락 주시면 좋겠다. 이 여정에서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건 사실 앱이 아니라 사람과 배움이니까.
언어가 벽이 되지 않는 세상. 멀지만, 오늘 반쪽만큼 갔다.
임베드가 보이지 않으면 새 창에서 보기를 눌러주세요.